은신희
나주 읍성 안쪽, 번화가에서 조금 벗어난 골목 끝에 있다. 골목으로 들어서도 집이 보이지 않는다. 끝에 닿아야 나온다.
찾아 들어가는 동안 사람은 바깥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끊긴 상태다. 위치가 하고 있던 일이다.
숨어들기 좋은 자리에 보통 따라오는 조건이 있다. 자연의 소리, 내다볼 풍경. 이 현장에는 없었다.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 있었다.

골목 끝에서 본 진입로. 집이 보이지 않는다.
안 보이는 자리에 있으면 보이게 만드는 쪽으로 간다. 골목에서 알아볼 수 있게 하고 입구를 넓힌다.
반대로 갔다. 골목이 하던 일을 집 안에서 이어가기로 했다.

고쳐진 외관. 골목과 같은 결의 담과 처마.
한옥은 열려 있다. 대청이 있고 툇마루가 있고 방과 방 사이가 잘 나뉘지 않는다. 이대로 두면 골목에서 만들어진 단절이 문 앞에서 끝난다.
집을 가로로 길게 구분했다.
툇마루와 내부 공간 사이에 벽을 세웠다. 이 벽이 바깥에서 들어오는 시선을 끊고,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시선 방향을 정한다. 벽을 지나야 열린다.
골목에서 한 번, 이 벽에서 한 번. 두 번 들어가야 도착한다.

통로와 안쪽 실내가 한 프레임에 걸린다. 지나야 열리는 지점.
개념도 — 닫힌 상태, 시선이 끊긴다
개념도 — 열린 상태, 벽을 지나면 열린다
앞마당과 뒷마당은 그대로 뒀다. 실내 여러 자리에서 바깥이 보인다.
다만 같은 방식으로 열지 않았다. 머무는 자리마다 바깥과 닿는 정도, 몸을 둘 수 있는 방향, 빛이 들어오는 양을 다르게 정했다. 넓게 내다보는 자리가 있고, 작게 머무는 자리가 있다.
공간을 채우는 대신 구석을 만들었다.
벽과 창과 가구가 만나는 자리에 혼자 앉거나 누울 수 있는 면을 뒀다. 시선이 한 번에 길게 지나가지 않도록 조정했다.
바깥이 끊기지 않은 채로 몸이 물러날 수 있는 자리다. 실내의 각 공간은 마당을 향하고, 그 안에서 머무는 사람이 자기 거리를 정한다.
중심을 하나로 만들지 않았다. 작은 중심을 여럿 뒀다. 골목에서 시작된 물러남이 마지막에는 한 사람 크기까지 좁혀진다.
공간의 이름은 은신희다. 숨바꼭질을 뜻하는 한자에서 가져왔다. 마당과 빛은 그대로 있고, 그 안에서 각자 머무를 구석을 고른다.

숨겨진 자리 안에서 다시 마주하는 막힌 벽.